삶에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역사 속의 위인을 통해 위안을 얻거나 삶의 방향을 찾곤 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의 저자, 룰루 밀러 역시
삶이라는 혼돈의 바다에서 바라보고 싶은 등대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선택한 위인은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입니다.
초인(Übermensch)과도 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고기의 5분의 1을 발명하고 명명한 어류학자,
세계 1차 대전을 예견하고 위험을 경고한 선지자, 그리고 딸과 아들을 잃고도 삶의 의지를 빛낸 아버지.
이러한 위대한 업적으로 그의 이름은 미국의 산봉우리 1곳에, 고등학교 2곳에, 정부의 선박 1개에,
한 도시의 대로에, 강 하나와 호수 둘에, 과학상 하나에 그의 이름인 ‘Jordan’ 이 명명되어 한 인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Übermensch)과도 같이 삶의 혼돈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학문, 우생학
하지만 조던의 삶, 마지막에 이루어 그가 탐구한 것은 ‘우생학(Eugenics)’ 입니다.
위대한 과학자답게 그는 세상에 파충류, 어류, 조류가 있고 그 사다리의 끝에는 가장 우월한 인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다 열등한 존재에서 보다 우월한 존재로 나아가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 와 같은 철학을 공유합니다.
당시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다윈의 진화 이론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인간의 인위적 개입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굴곡을 스스로 극복해 온 , 게다가 이 세상의 모든 물고기 1.3만여 종 중 2,500종 이상을
식별하고 목록화한 그였기에 우생학이라는 명료한 질서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고래가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아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고래가 새끼를 낳는 이유로 포유류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 들었을 때 과학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물에 사는 것이 어류, 하늘을 나는 것이 새, 이렇게 외형적인 특징으로 분류 하였지만
최근에는 과학의 발달로 DNA 분석을 통해 생물의 공통점을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파충류인 줄 알았던 공룡은 사실 조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어류’ 라는 범주 역시 그저 우리가 머릿속에서 편하게 구분한 개념일 뿐,
어류를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공통점은 없다는 사실 역시 밝혀졌습니다.
즉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어류의 분류체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류학자로서 그가 세운 위대한 업적은 모래 위에 세워진 환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절대’라는 건 없군요
철학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면, 과학은 확고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세상에는 검은색 백조도 존재하고, 우생학은 틀렸으며, 물고기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딱딱한 바닥처럼 의지할 수 있는 어떤 확고한 믿음과 신념도 없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보편을 위하여 개인성을 포기하고 절대정신의 일부가 되기를 주장한 키에르케고르처럼, 종교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폭탄을 던져서라도 실존적 자유를 토대로 사회에 참여하는 행위 - 앙가주망 - 을 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처럼,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 보는 삶은 어떨까요.
혹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인 우울함에서 벗어나 열정과 감정에 휩쓸리면서, 다른 사람과 충돌하며 살아가는 것이
에로스의 본질이라는 한병철처럼, 나를 파괴하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삶을 택해도 좋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올바른 삶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요.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
우생학을 주장하고 설파한 데이비드 스타의 이름을 기리는 많은 건물과 지명은 이제 미국에서 사라졌습니다.
과학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가 간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 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시어리의 원칙 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입니다.
기존의 제품, 기존의 방식, 기존의 철학 모두 언젠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며 새로운 방식과 생각을 포용해야 합니다.
의심 없이 과거의 경험에 갖혀 있을 때 사람도 회사도 낡게 됩니다.
1976년에 창립한 애플이, 1837년에 시작한 P&G가, 100년도 더 된 구찌가
아직도 젊은 회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의심하며 더 나은 생각을 받아들인 이 포용성 때문이지 않을까요.
Sincerely Yours,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매일 정답을 찾고 있는 신시어리
삶에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역사 속의 위인을 통해 위안을 얻거나 삶의 방향을 찾곤 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의 저자, 룰루 밀러 역시
삶이라는 혼돈의 바다에서 바라보고 싶은 등대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선택한 위인은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입니다.
초인(Übermensch)과도 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고기의 5분의 1을 발명하고 명명한 어류학자,
세계 1차 대전을 예견하고 위험을 경고한 선지자, 그리고 딸과 아들을 잃고도 삶의 의지를 빛낸 아버지.
이러한 위대한 업적으로 그의 이름은 미국의 산봉우리 1곳에, 고등학교 2곳에, 정부의 선박 1개에,
한 도시의 대로에, 강 하나와 호수 둘에, 과학상 하나에 그의 이름인 ‘Jordan’ 이 명명되어 한 인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Übermensch)과도 같이 삶의 혼돈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학문, 우생학
하지만 조던의 삶, 마지막에 이루어 그가 탐구한 것은 ‘우생학(Eugenics)’ 입니다.
위대한 과학자답게 그는 세상에 파충류, 어류, 조류가 있고 그 사다리의 끝에는 가장 우월한 인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다 열등한 존재에서 보다 우월한 존재로 나아가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 와 같은 철학을 공유합니다.
당시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다윈의 진화 이론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인간의 인위적 개입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굴곡을 스스로 극복해 온 , 게다가 이 세상의 모든 물고기 1.3만여 종 중 2,500종 이상을
식별하고 목록화한 그였기에 우생학이라는 명료한 질서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고래가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아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고래가 새끼를 낳는 이유로 포유류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 들었을 때 과학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물에 사는 것이 어류, 하늘을 나는 것이 새, 이렇게 외형적인 특징으로 분류 하였지만
최근에는 과학의 발달로 DNA 분석을 통해 생물의 공통점을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파충류인 줄 알았던 공룡은 사실 조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어류’ 라는 범주 역시 그저 우리가 머릿속에서 편하게 구분한 개념일 뿐,
어류를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공통점은 없다는 사실 역시 밝혀졌습니다.
즉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어류의 분류체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류학자로서 그가 세운 위대한 업적은 모래 위에 세워진 환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절대’라는 건 없군요
철학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면, 과학은 확고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세상에는 검은색 백조도 존재하고, 우생학은 틀렸으며, 물고기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딱딱한 바닥처럼 의지할 수 있는 어떤 확고한 믿음과 신념도 없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보편을 위하여 개인성을 포기하고 절대정신의 일부가 되기를 주장한 키에르케고르처럼, 종교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폭탄을 던져서라도 실존적 자유를 토대로 사회에 참여하는 행위 - 앙가주망 - 을 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처럼,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 보는 삶은 어떨까요.
혹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인 우울함에서 벗어나 열정과 감정에 휩쓸리면서, 다른 사람과 충돌하며 살아가는 것이
에로스의 본질이라는 한병철처럼, 나를 파괴하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삶을 택해도 좋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올바른 삶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요.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
우생학을 주장하고 설파한 데이비드 스타의 이름을 기리는 많은 건물과 지명은 이제 미국에서 사라졌습니다.
과학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가 간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 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시어리의 원칙 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입니다.
기존의 제품, 기존의 방식, 기존의 철학 모두 언젠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며 새로운 방식과 생각을 포용해야 합니다.
의심 없이 과거의 경험에 갖혀 있을 때 사람도 회사도 낡게 됩니다.
1976년에 창립한 애플이, 1837년에 시작한 P&G가, 100년도 더 된 구찌가
아직도 젊은 회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의심하며 더 나은 생각을 받아들인 이 포용성 때문이지 않을까요.
Sincerely Yours,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매일 정답을 찾고 있는 신시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