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거실의 진열장에는 언제나 발렌타인 위스키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에는 면세점에서 발렌타인 위스키를 사서 부모님께 선물 드리곤 하는데,
이렇게 발렌타인 위스키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라 할 수 있는 여행선물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친구의 집들이 선물을 살 때는 발렌타인이 아닌 맥켈란 위스키를 샀습니다.
어쩐지 요새는 블랜디드 위스키는 옛것이 되었고 적어도 싱글몰트 위스키는 되어야 세련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맥캘란이나 발베니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가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밀어내기 시작한 것일까요.
혹시 위스키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였을까요.
위스키의 탄생
위스키 증류의 시작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분분한 논쟁입니다만
15세기 초반 스코틀랜드의 이발사들이 위스키에 대한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6세기에 위스키 증류기술이 대중화되며 스코틀랜드의 농부들이 남는 보리로
위스키를 직접 만들어 마시기 시작하며 위스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17세기가 되며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이어진 많은 전쟁으로 인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했고 이는 주류세 증세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조치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된 유럽의 밀주업자들은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뒤 밀주를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밀주업자들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전략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밀주업자들은 위스키를 몰래 만들어야 했으므로 증류를 위해 석탄 대신 스코틀랜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탄(Peat)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나무를 태운 듯한 고유한 스모키한 향이 위스키에 입혀지게 됩니다.
위스키에서 '피트향이 짙다'고 표현할 때의 피트향이 바로 이 이탄을 때울 때 나는 향입니다.
또한 밀주업자들이 완성된 위스키를 유럽으로 운송하기 위해 캐스크(Cask, 통)를 사용하게 되면서 위스키를 캐스크에 숙성시키는 기법이 시작됩니다.
특히 17세기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인기가 높았던 스페인 셰리(Sherry) 와인을 담은 셰리 캐스크가 스코틀랜드에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뒤 갈 곳 없는 셰리 캐스크는 위스키 운송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많은 인기로 공급이 되지 않아 아예 셰리캐스크를 위해 셰리와인을 만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일라 위스키의 피트향, 꽃향기 가득한 셰리캐스크의 풍미는 바로 이 17세기 밀주 시대가 만든 선물입니다.
18세기,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
18세기가 되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수도원에서 만들 만큼 건전한 맥주가 시대적 흐름을 타게 되며
맥주 생산업자들은 로비를 통해 맥주의 세금을 없애고 위스키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수많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생산자들은 높아진 세금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때마침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개통되었고 증기선의 발명, 선박법의 변화로
위스키를 해외로 판매하는 비용이 매우 낮아지게 되며, 바로 이때가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하는 시점입니다.
위스키의 수출이 시작되면서 위스키 생산자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저렴한 곡물 위스키에 몰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앞다투며 출시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의 몰트만 사용하여 개성이 너무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 보다, 여러 몰트와 곡물을 섞어 맛이 부드럽고
가격까지 저렴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세계로 수출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마침 유럽에서는 '포도 필록세라(Grape phylloxera)' 병충해로 와인경작이 20여 년간 중단되면서
유럽의 와인 업계에서는 최악의 불운이, 하지만 스카치위스키 생산자들에게는 최대의 행운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블렌디드 위스키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면서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는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졸지에 블렌디드 위스키용 원액을 납품하는 역할로 전락하게 된 것이지요.
20세기, 싱글몰트 위스키의 반격
19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세계대전은 블렌디드, 싱글몰트 할 것 없이
모든 위스키의 수출 뿐만 아니라 생산, 소비 역시 줄어드는 암흑기에 접어듭니다.
식량이 부족한 전쟁 중에 많은 곡물을 술로 만들어 마시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세계대전은 결과적으로 스카치위스키 업계에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쟁 중 유럽에 머물던 미군들이 스카치위스키를 즐겨 마시게 되면서 엄청난 물량이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조니워커(Johnnie Waler), 커티삭(Cutty Sark) 등이 1960년대부터 등장하며
블렌디드 위스키의 대규모 생산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블렌디드 위스키가 아닌, 독자적인 싱글몰트 위스키를 1886년부터
오늘날까지 고집하며 만드는 증류소가 있었으니, 바로 싱글몰트의 역사라고 불리는 글렌피딕(Glenfiddich)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등의 경제 위기와 선호도의 변화로 블렌디드 위스키는 과거의 술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90년대부터 기존에 즐겨 마시던 블렌디드 위스키가 아닌, 새롭고 개성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에 가입한 94년도부터 블렌디드 위스키의 전성시대가 한발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9시 뉴스를 보면 나오는 폭탄주 자료화면에서는 위스키의 높은 사회적 위상을 고려하듯
맥주잔 위에 우뚝 서 있는 위스키 잔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조니워커로 대표되는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흔히 접대용 술이라고 불리우던 위스키는 경기불황과 접대비 상한제,
그리고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폭탄주 문화가 사라지게 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블렌디드 위스키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싱글몰트 위스키입니다.
음주의 문화가 취함이 아닌 취향으로 바뀌면서 개성 있는 싱글몰트는 위스키의 젊은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고 알려진 라프로익(Laphroaig)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트를 몰트 건조과정에 사용하고 바닷가에서 숙성합니다.
그래서 마셔보면 특유의 피트향와 솔티한 맛으로 불에 탄 나무에 소독병을 뿌려 마시는 느낌입니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는 소독약으로 속여 판매한 적도 있는 개성 있는 위스키로 누구나 좋아하진 않지만,
마음에 들면 사랑에 빠지는 Love or Hate 위스키로도 유명합니다.
요새는 특히 구하기 어려운 맥켈란(Macallan) 세리케스크 위스키는 맥캘란 특유의 섬세한 맛과 셰리의 과일 향이 잘 어우러져
싱글몰트 위스키가 궁금한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 수 있어 발렌타인의 뒤를 잇는 국민 위스키라고 해도 손색 없습니다.
특히 숙성하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부드럽고 화사한 맛이 증가하여 위스키계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싱글의 시대
하지만 단일한 몰트와 물로만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유행은 단지 음주문화의 변화 때문은 아닙니다.
모든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이해하고 제품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생산자를 신뢰하는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요즘은 여러 원두를 섞어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 체인점의 아메리카노 대신,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같은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 필터 커피를 더 좋아합니다.
브랜드와 포장지만 보고 고르는 초콜릿 대신 제작자가 카카오를 직접 선별하고 가공하여 만드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 인기입니다.
심지어 와인은 포도의 품종과 떼루아(Terroir), 빈티지까지 라벨에 적혀져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과 보존을 위해
이산화황을 첨가하고 현대식으로 재배되고 생산된다는 이유로 기존의 와인은 컨벤셔널 와인(Conventional Wine)으로 취급되며
포도를 손으로 직접 따고 공기 중의 효모 만을 사용하며 유기농 비료를 고집하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이 와인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섞지 말고, 아름답게
무언가를 더하는 일, 서로 다른 무언가를 섞는 일은 결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처럼 인식되는 요즘입니다.
잘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는 다채로운 향과 맛을 자랑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숙성된 개성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굿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판촉물' 이라는 명칭으로 저렴하고 빠르게 선물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그때그때 구매한 다양한 제품들을 보다 저렴한 인쇄소에 맡기고
서로 어울리는 지와는 관계없이 쇼핑백 등에 담아 선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성의 시대입니다.
서로 어울리는 굿즈 만을 미리 선별하고 인쇄부터 마지막 포장까지 직접 담당하여
퀄리티에 대하여 책임지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진정성 있는 회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신시어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물론 진정성 있는 제작은 어렵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 때 보리를 발아하는 몰팅(Maliting) 과정에서는
최적의 수분함량을 유지하기 위해 몇 시간마다 바닥의 보리를 직접 뒤집는 몰트맨이 있습니다.
그의 어깨가 시간이 지나며 원숭이처럼 굽은 것을 보고 몽키 숄더(Monkey Shoulder)라고 했는데,
이렇게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장인의 노력과 철학을 기리는 몽키숄더라는 이름의 위스키가 출시될 정도입니다.
모든 굿즈가 입고할 때마다 수량을 검수하고, 시안을 비교해보고,
품질을 직접 확인하는 신시어리의 진정성에 대한 고집은 싱글몰트 위스키와 닮았습니다.
블렌디드를 넘어 찾아온 싱글의 시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진정성의 시대에 신시어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섞지 말고 아름답게.
Sincerely Yours,
스파클링 유리컵에 담긴 하이볼을 마시며
어릴 적 거실의 진열장에는 언제나 발렌타인 위스키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에는 면세점에서 발렌타인 위스키를 사서 부모님께 선물 드리곤 하는데,
이렇게 발렌타인 위스키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라 할 수 있는 여행선물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친구의 집들이 선물을 살 때는 발렌타인이 아닌 맥켈란 위스키를 샀습니다.
어쩐지 요새는 블랜디드 위스키는 옛것이 되었고 적어도 싱글몰트 위스키는 되어야 세련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맥캘란이나 발베니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가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밀어내기 시작한 것일까요.
혹시 위스키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였을까요.
위스키의 탄생
위스키 증류의 시작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분분한 논쟁입니다만
15세기 초반 스코틀랜드의 이발사들이 위스키에 대한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6세기에 위스키 증류기술이 대중화되며 스코틀랜드의 농부들이 남는 보리로
위스키를 직접 만들어 마시기 시작하며 위스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17세기가 되며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이어진 많은 전쟁으로 인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했고 이는 주류세 증세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조치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된 유럽의 밀주업자들은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뒤 밀주를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밀주업자들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전략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밀주업자들은 위스키를 몰래 만들어야 했으므로 증류를 위해 석탄 대신 스코틀랜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탄(Peat)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나무를 태운 듯한 고유한 스모키한 향이 위스키에 입혀지게 됩니다.
위스키에서 '피트향이 짙다'고 표현할 때의 피트향이 바로 이 이탄을 때울 때 나는 향입니다.
또한 밀주업자들이 완성된 위스키를 유럽으로 운송하기 위해 캐스크(Cask, 통)를 사용하게 되면서 위스키를 캐스크에 숙성시키는 기법이 시작됩니다.
특히 17세기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인기가 높았던 스페인 셰리(Sherry) 와인을 담은 셰리 캐스크가 스코틀랜드에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뒤 갈 곳 없는 셰리 캐스크는 위스키 운송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많은 인기로 공급이 되지 않아 아예 셰리캐스크를 위해 셰리와인을 만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일라 위스키의 피트향, 꽃향기 가득한 셰리캐스크의 풍미는 바로 이 17세기 밀주 시대가 만든 선물입니다.
18세기,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
18세기가 되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수도원에서 만들 만큼 건전한 맥주가 시대적 흐름을 타게 되며
맥주 생산업자들은 로비를 통해 맥주의 세금을 없애고 위스키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수많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생산자들은 높아진 세금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때마침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개통되었고 증기선의 발명, 선박법의 변화로
위스키를 해외로 판매하는 비용이 매우 낮아지게 되며, 바로 이때가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하는 시점입니다.
위스키의 수출이 시작되면서 위스키 생산자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저렴한 곡물 위스키에 몰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앞다투며 출시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의 몰트만 사용하여 개성이 너무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 보다, 여러 몰트와 곡물을 섞어 맛이 부드럽고
가격까지 저렴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세계로 수출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마침 유럽에서는 '포도 필록세라(Grape phylloxera)' 병충해로 와인경작이 20여 년간 중단되면서
유럽의 와인 업계에서는 최악의 불운이, 하지만 스카치위스키 생산자들에게는 최대의 행운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블렌디드 위스키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면서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는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졸지에 블렌디드 위스키용 원액을 납품하는 역할로 전락하게 된 것이지요.
20세기, 싱글몰트 위스키의 반격
19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세계대전은 블렌디드, 싱글몰트 할 것 없이
모든 위스키의 수출 뿐만 아니라 생산, 소비 역시 줄어드는 암흑기에 접어듭니다.
식량이 부족한 전쟁 중에 많은 곡물을 술로 만들어 마시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세계대전은 결과적으로 스카치위스키 업계에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쟁 중 유럽에 머물던 미군들이 스카치위스키를 즐겨 마시게 되면서 엄청난 물량이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조니워커(Johnnie Waler), 커티삭(Cutty Sark) 등이 1960년대부터 등장하며
블렌디드 위스키의 대규모 생산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블렌디드 위스키가 아닌, 독자적인 싱글몰트 위스키를 1886년부터
오늘날까지 고집하며 만드는 증류소가 있었으니, 바로 싱글몰트의 역사라고 불리는 글렌피딕(Glenfiddich)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등의 경제 위기와 선호도의 변화로 블렌디드 위스키는 과거의 술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90년대부터 기존에 즐겨 마시던 블렌디드 위스키가 아닌, 새롭고 개성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에 가입한 94년도부터 블렌디드 위스키의 전성시대가 한발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9시 뉴스를 보면 나오는 폭탄주 자료화면에서는 위스키의 높은 사회적 위상을 고려하듯
맥주잔 위에 우뚝 서 있는 위스키 잔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조니워커로 대표되는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흔히 접대용 술이라고 불리우던 위스키는 경기불황과 접대비 상한제,
그리고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폭탄주 문화가 사라지게 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블렌디드 위스키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싱글몰트 위스키입니다.
음주의 문화가 취함이 아닌 취향으로 바뀌면서 개성 있는 싱글몰트는 위스키의 젊은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고 알려진 라프로익(Laphroaig)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트를 몰트 건조과정에 사용하고 바닷가에서 숙성합니다.
그래서 마셔보면 특유의 피트향와 솔티한 맛으로 불에 탄 나무에 소독병을 뿌려 마시는 느낌입니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는 소독약으로 속여 판매한 적도 있는 개성 있는 위스키로 누구나 좋아하진 않지만,
마음에 들면 사랑에 빠지는 Love or Hate 위스키로도 유명합니다.
요새는 특히 구하기 어려운 맥켈란(Macallan) 세리케스크 위스키는 맥캘란 특유의 섬세한 맛과 셰리의 과일 향이 잘 어우러져
싱글몰트 위스키가 궁금한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 수 있어 발렌타인의 뒤를 잇는 국민 위스키라고 해도 손색 없습니다.
특히 숙성하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부드럽고 화사한 맛이 증가하여 위스키계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싱글의 시대
하지만 단일한 몰트와 물로만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유행은 단지 음주문화의 변화 때문은 아닙니다.
모든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이해하고 제품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생산자를 신뢰하는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요즘은 여러 원두를 섞어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 체인점의 아메리카노 대신,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같은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 필터 커피를 더 좋아합니다.
브랜드와 포장지만 보고 고르는 초콜릿 대신 제작자가 카카오를 직접 선별하고 가공하여 만드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 인기입니다.
심지어 와인은 포도의 품종과 떼루아(Terroir), 빈티지까지 라벨에 적혀져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과 보존을 위해
이산화황을 첨가하고 현대식으로 재배되고 생산된다는 이유로 기존의 와인은 컨벤셔널 와인(Conventional Wine)으로 취급되며
포도를 손으로 직접 따고 공기 중의 효모 만을 사용하며 유기농 비료를 고집하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이 와인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섞지 말고, 아름답게
무언가를 더하는 일, 서로 다른 무언가를 섞는 일은 결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처럼 인식되는 요즘입니다.
잘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는 다채로운 향과 맛을 자랑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숙성된 개성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굿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판촉물' 이라는 명칭으로 저렴하고 빠르게 선물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그때그때 구매한 다양한 제품들을 보다 저렴한 인쇄소에 맡기고
서로 어울리는 지와는 관계없이 쇼핑백 등에 담아 선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성의 시대입니다.
서로 어울리는 굿즈 만을 미리 선별하고 인쇄부터 마지막 포장까지 직접 담당하여
퀄리티에 대하여 책임지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진정성 있는 회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신시어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물론 진정성 있는 제작은 어렵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 때 보리를 발아하는 몰팅(Maliting) 과정에서는
최적의 수분함량을 유지하기 위해 몇 시간마다 바닥의 보리를 직접 뒤집는 몰트맨이 있습니다.
그의 어깨가 시간이 지나며 원숭이처럼 굽은 것을 보고 몽키 숄더(Monkey Shoulder)라고 했는데,
이렇게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장인의 노력과 철학을 기리는 몽키숄더라는 이름의 위스키가 출시될 정도입니다.
모든 굿즈가 입고할 때마다 수량을 검수하고, 시안을 비교해보고,
품질을 직접 확인하는 신시어리의 진정성에 대한 고집은 싱글몰트 위스키와 닮았습니다.
블렌디드를 넘어 찾아온 싱글의 시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진정성의 시대에 신시어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섞지 말고 아름답게.
Sincerely Yours,
스파클링 유리컵에 담긴 하이볼을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