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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점


신시어리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과학과 철학, 기술과 예술까지 경계 없는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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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세상에 대한 관점

신시어리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과학과 철학, 기술과 예술까지 경계 없는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쇼룸

'포스트모던'만큼 '포스트모던' 같은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조금 단순하게는 글자 그대로 합리성으로 뭉친 모더니즘 이후(Post)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리오타르가 1979년에 출간한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통해 하나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리오타르는 저서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재현을 통한 숭고(Le Sublime)'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역시 유명한 철학자는 어려운 개념을 더욱 어려운 표현으로 치환하는데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포스트모던이라는 난해한 개념을 좀 더 알기 쉬운 예술품으로 만들어 

우리 눈앞에 던져 놓은 예술가이자 기획자, 데미안 허스트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Damien Hirst, 1991)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Image: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Image: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미학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을 바넷 뉴먼의 1960년대 작품,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는가'로 볼 수 있겠지만, 

대중화에 성공한 것은 데미안 허스트의 97년도 기획전시회, "Sensation"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 전시회의 이름인 "Sensation"이 포스트모던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세명을 한 번에 잡아먹고도 남을 거대한 크기의 상어가 잘려 포름알데히드에 넣어진 

데미안 허스트의 충격적인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확히는 어떤 '생각(Thinking)'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느껴지는지(Sense)'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어울리는 질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념예술은 원근법이나 색채의 대비, 구도와 같은 이성적인 논리를 통한 '이해'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체감(Sense)'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적으로 분할된 프레임, 그 안에 펼쳐진 거대한 포식자의 죽음, 그리고 나는 안전하다는 안도감과 같은 감정은 

종합적으로 '무엇' 이라고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이렇게 머리가 아닌 내면에서 느껴지는 불쾌함과 쾌락을 오고 가는 복잡한 느낌이 리오타르가 말한 '숭고(le sublime)'라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념예술은 아쉽게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해야만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합니다. 

590억 원에 달하는 제프 쿤스의 <풍선개 Balloon Dog>처럼 압도적인 크기 앞에서는 어떤 설명도, 구도도, 이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떠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뿐이지요.




포스트모던 시대의 쇼룸


신시어리 쇼룸(Sincerely Showroom), 2021



브랜드 굿즈는 그 특성상 받는 분들께서 가격이 얼마인지,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물을 받습니다.

이렇게 굿즈에 대한 '느낌'이 굿즈에 대한 '이해'보다 선행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닮아 있습니다.


신시어리의 쇼룸 역시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도 어떠한 감정을 먼저 느낄 수 있는, '굿즈' 와도 같은 공간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화이트큐브 갤러리를 닮은 순백의 공간, 생소한 아크릴 테이블의 촉감, 비현실적인 꽃송이, 오브제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놓인 굿즈를 처음 마주하셨을 때의 새로운 경험은 향후 굿즈를 받으실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드리는 것이 포스트모던하지 않다고요?


괜찮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더 이상 선언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니 저에게도 '포스트모던하지 않다고 선언'할 수 없을 테니까요.




Sincerely Yours,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을 기다리는 신시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