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브랜드 굿즈라는 단어가 꽤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높은 퀄리티의 정성을 담은 제품뿐만 아니라 판촉물, 홍보물, 인쇄물 등 다양한 경우에도
굿즈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희석되는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물은 굿즈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또한 굿즈와 예술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 차이점을 예술을 정의하려 노력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사상에서 찾아봤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선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시입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 김광균 추일서정
그리고 아래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낙엽, 매년 봐도 아름다운 낙엽.
이번 주말에는 산에 가서 낙엽을 찍어야겠다. 같이 갈 사람? -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
위 두 가지 사례에서 하나는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이 아닙니다.
그 답은 누구나 쉽게 고를 수 있겠지만, 왜 예술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 이 의문은 수많은 미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술의 정의에 대해 고민한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터 쉬클롭스키는 무엇이 글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형식주의자는 예술성을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 찾았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혼란한 근현대사라는 특정한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과 다른 특수한 형식이기 때문에 예술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란 바로 형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단지 형식만 다르다면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술이란 낯선 것
“낙엽은 폴란드 망명지폐” 라는 문장은 낯섭니다.
하지만 “낙엽은 아름답다”는 문장은 너무 일상적이라 그러한 문장이 있는지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형식이 다른 것만으로는 예술이 될 순 없습니다.
일상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이어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형식주의자의 생각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수치 Shame>에서는 한 인물이 ‘태형’이라는 형벌을 받을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톨스토이는 단순히 ‘태형’이라는 명사를 적는 대신에 이렇게 서술합니다.
“법을 어긴 사람을 발가벗기고, 마룻바닥에 집어 던진 후, 회초리로 그들의 발가벗은 엉덩이를 때리는 것”
이런 묘사를 통해 ‘태형’이라는 대상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태형’이란 행위가 구체적인 서술로 지각의 난이도를 높여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새롭게 인식됩니다.
이는 다른 예술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샘 Fountain>을 출품합니다.
갤러리 한편에 방치되어 있던 이 작품은 당대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뒤샹이 동네 철물점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산 다음, ‘R. Mutt’라는 가명을 적어 놓은 채 출품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형식주의 이론에 따른다면 <샘 Fountain> 역시 충분히 훌륭한 예술입니다.
소변기가 화장실에서 본래의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새로움’을 갖지 않는 일상적 물건일 뿐입니다.
그러나 소변기가 갤러리로 옮겨져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리고 ‘소변기’가 아닌 ‘샘’으로 이름 불리는 순간, 더 이상 소변기는 소변기가 아니게 됩니다.
‘레디메이드 예술(Ready-made art)’라는 새로운 형식이 되어 우리에게 낯선 감정을 전하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술의 본질은 예술의 소재나 대상이 아니라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것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으로 비예술적인 재료를 예술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물건이 아닌, 굿즈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구색을 갖추기를 위해 으레 제공하는 홍보용 다이어리를 찾아서 회사의 로고를 넣어 전달한다면
받는 분은 그 다이어리에서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받는 분을 생각해 어디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퀄리티의 다이어리에
기업 철학이 담긴 슬로건과 로고를 새기고, 다이어리에 맞춰 개발한 패키지에 담아 선물한다면
그 다이어리는 일상적인 물건을 넘어 기억에 남는 특별한 굿즈가 됩니다.
신중하게 직접 선별한 사물에 아름다운 형식이 만나
받는 분에게 특별한 경험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굿즈가 홍보물이 아닌 굿즈인 이유입니다.

Sincerely Yours,
굿즈와 예술품의 차이를 고민하며
최근에는 브랜드 굿즈라는 단어가 꽤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높은 퀄리티의 정성을 담은 제품뿐만 아니라 판촉물, 홍보물, 인쇄물 등 다양한 경우에도
굿즈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희석되는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물은 굿즈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또한 굿즈와 예술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 차이점을 예술을 정의하려 노력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사상에서 찾아봤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선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시입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 김광균 추일서정
그리고 아래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낙엽, 매년 봐도 아름다운 낙엽.
이번 주말에는 산에 가서 낙엽을 찍어야겠다. 같이 갈 사람? -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
위 두 가지 사례에서 하나는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이 아닙니다.
그 답은 누구나 쉽게 고를 수 있겠지만, 왜 예술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 이 의문은 수많은 미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술의 정의에 대해 고민한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터 쉬클롭스키는 무엇이 글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형식주의자는 예술성을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 찾았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혼란한 근현대사라는 특정한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과 다른 특수한 형식이기 때문에 예술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란 바로 형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단지 형식만 다르다면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술이란 낯선 것
“낙엽은 폴란드 망명지폐” 라는 문장은 낯섭니다.
하지만 “낙엽은 아름답다”는 문장은 너무 일상적이라 그러한 문장이 있는지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형식이 다른 것만으로는 예술이 될 순 없습니다.
일상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이어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형식주의자의 생각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수치 Shame>에서는 한 인물이 ‘태형’이라는 형벌을 받을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톨스토이는 단순히 ‘태형’이라는 명사를 적는 대신에 이렇게 서술합니다.
“법을 어긴 사람을 발가벗기고, 마룻바닥에 집어 던진 후, 회초리로 그들의 발가벗은 엉덩이를 때리는 것”
이런 묘사를 통해 ‘태형’이라는 대상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태형’이란 행위가 구체적인 서술로 지각의 난이도를 높여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새롭게 인식됩니다.
이는 다른 예술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샘 Fountain>을 출품합니다.
갤러리 한편에 방치되어 있던 이 작품은 당대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뒤샹이 동네 철물점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산 다음, ‘R. Mutt’라는 가명을 적어 놓은 채 출품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형식주의 이론에 따른다면 <샘 Fountain> 역시 충분히 훌륭한 예술입니다.
소변기가 화장실에서 본래의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새로움’을 갖지 않는 일상적 물건일 뿐입니다.
그러나 소변기가 갤러리로 옮겨져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리고 ‘소변기’가 아닌 ‘샘’으로 이름 불리는 순간, 더 이상 소변기는 소변기가 아니게 됩니다.
‘레디메이드 예술(Ready-made art)’라는 새로운 형식이 되어 우리에게 낯선 감정을 전하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술의 본질은 예술의 소재나 대상이 아니라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것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으로 비예술적인 재료를 예술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물건이 아닌, 굿즈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구색을 갖추기를 위해 으레 제공하는 홍보용 다이어리를 찾아서 회사의 로고를 넣어 전달한다면
받는 분은 그 다이어리에서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받는 분을 생각해 어디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퀄리티의 다이어리에
기업 철학이 담긴 슬로건과 로고를 새기고, 다이어리에 맞춰 개발한 패키지에 담아 선물한다면
그 다이어리는 일상적인 물건을 넘어 기억에 남는 특별한 굿즈가 됩니다.
신중하게 직접 선별한 사물에 아름다운 형식이 만나
받는 분에게 특별한 경험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굿즈가 홍보물이 아닌 굿즈인 이유입니다.
Sincerely Yours,
굿즈와 예술품의 차이를 고민하며